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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고궁 산책 (창덕궁)

by 화담 2024.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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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나들이

창덕궁(昌德宮)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궁이다. 

 

창경궁은 1405년(태종5)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궁궐중 

처음으로 다시 지어졌으며, 이후 역대 왕들이 1867년 경복궁이중건될

때까지 약 270여년 동안 창덕궁을 더 많이 사용하여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은 1910년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낙선재 권역은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가족(순정황후(순종2번째 황후),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고종의 딸)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후원은 1406년(태종 6) 창덕궁 북쪽에 처음 조성되었고 1463년(세조 9)

확장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인조 대부터 순조 대까지

옥류천, 규장각, 주합루, 애련지, 의두합, 연경당

등이 추가로 조성되면서 창덕궁은 정치의 공간과 더불어 휴식과 생활의 

공간이 조화를 이루었다. 

창덕궁은 창경궁과 경계없이 '동궐(東闕)' 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창덕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돈화'는

교화를 돈독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돈화문은

1412(태종12)에 처음 지어졌는데 창건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다시 지었는데.

규모는 2층 누각형 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돈화문 앞에는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하였고,

신하들은 보통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원래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한다.

돈화문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돈화문을 

지나면 양옆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가

총 8그루가 있는데, 나무의 높이는 15~16m,

가슴 높이 줄기 줄기 둘레는 90~178cm에 이르는 

오래된 나무이다.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왕을 모시는 신하들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궐내각사

(궁궐 안에 두는 왕의 직속 기관들)가 위치한

궁궐 입구에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창덕궁 회화나무군은 200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창덕궁의 건축과 경관은

전통적인 풍수 원리와

유교의 모범을 보여준다.

 

 

궁월 배치는

풍수에 기초를 두었고,

건물은 기능적 · 상징적으로

조선왕조의 독특한

세계관을 함께 표현하는

유교 사상에 따라 

배치되었다. 

 

 

 

풍수적 유교사상에

따라 배치되었다는 

겹겹히 층층으로 보이는 

전각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궁 나들이

문화와 역사를 

학습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방문할 때마다 옛궁에 대해서

좀더 알게 되고 가까워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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